물에 몸 전체를 완전히 담구었다가 나오는 개신교의 침례 의식은 옛 자아가 물에서 씻겨지고 새 사람으로 새롭게 거듭난다는 의미가 있다. 그 물이나 행위나 목사님에게 죄를 씻는 영험한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상징인 것이다.
지난주 내가 작은 실패 후 떠났던 - 혹은 쫓겨났던 - 장소를 7년 만에 다녀왔다. 그리고 변화한 나 자신이 너무 낯설어 혼란스럽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고,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다. 평소와 약간씩 어긋나게 생활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져서인 것 같다. 바보 같은 메타포 싫은데 딱히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쓰고 다니던 안경 도수가 바뀐 것 같은 느낌이다.
여행 말미부터 지금의 내가 별문제 없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할 줄 아는 것, 못하는 것, 내 얼굴과 몸, 출신, 세련된 영어 같은 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산다. 밥을 먹을 때도 생각이 없고, 컴퓨터를 열면 집중해 일하고, 사람들과 떠들다 집에 오고, 입고 싶은 옷을 입고, 뒤척이지 않고 잠을 잔다. 귀엽고 needy하지 않는 내 모습을 수정해야 하는 이유도 이젠 그다지 잘 모르겠다 (사실 아무 생각이 없다).
나는 그저 자유로워진 것일까? 아니면 너무나 overwhelming한 경험 속 핸들하질 못하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걸까?
내가 헛것을 보며 토하고 울던 기숙사 앞을 지날 때에도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감격에 겨워 꺼이꺼이 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예전 룸메이트의 부모님을 만나러 갈 때는 두시간 반 내내 울며 운전을 했다. 짐가방 세 개를 들고 공항에 내려 동물처럼 울던 아시안 여자애를 한국에 보내고, 생일 때마다 페이스북으로 메시지를 보내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해주셨던 분들. 이번에 나는 할 줄 아는 모든 영어를 써가며 개그를 쳤고 내 석사 논문과 연구 분야에 대해 한참을 조잘댔다. 우리가 헤어질 때, 아주머니는 내가 7년 전 좋아했다는 오트밀 초콜릿 칩 쿠키를 구워왔다며 집락 두 봉지를 쥐어주셨다.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번 여행이 내 삶에 시그니피컨트한 어떤 상징이 되었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나중엔 이 느낌이 기억이 나지 않을까봐 일단 되는 대로 글을 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