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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9. 29. 05:43

삼십 년 넘게 무난함을 미덕으로 삼으며 살아온 나. 
요즘 살 만한지 자꾸 이런 것에 관심이 간다.
 
그것은 바로~ 날티. 
 
날티란 무엇인가? 챗지피티에게 물어보았다. 개념화해 봐. 조작화해 봐.

내가 naltiness라고 이름 지은 거 아님 ㅜㅜ 구리쟈나

 
왜 이런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느냐 하면, 일단 인터넷 여기저기에서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 "날티상"이라는 표현이 "두부상"처럼 매력적인 외형의 한 유형을 지칭하게 된 듯하다. 
 

이전 5년 대비 5,000% 이상 증가한 "날티상" 검색어. 걍 신조어 탄생인 듯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내 학생들의 타투와 피어싱, 그리고 예전 같으면 내가 좀 불량해 보인다고 생각했을 법한 모습들을 자주 접하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타투는 오랫동안 날티, 그러니까 "좀 불량해 보임"의 대표적인 cue였다. 여기는 미국이고 타투에 대한 인식이 한국과 다르다는 건 알면서도 그랬다. 그런데 타투를 한 학생들이 정말 많다. 그리고 그중에는 성실하고, 똑똑하고, 예의 바르고, 책임감 있는 학생들도 많다. 그러다 보니 점점.. 이런 외형적 cue와 도덕성의 상관이 실제로 얼마나 큰가? 대체 몬상관이냐?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나는 저 cue들만 보고 성실성이나 인격까지 꽤 강하게 추론해 왔던 거 같다. 일종의 representativeness heuristic인데.. 그걸 별 의심 없이 생각을 정교하지 않게 하고 살았구나 싶다. 사실은 이런식으로 분리해야 하는 건데.
 
타투 --> 취향/표현 방식
성실성 --> 실제 행동으로 판단
인격 --> 관계/선택으로 판단
 
당연한 얘기같은데 나는 자꾸 이런 것들을 한 덩어리로 묶어버린다. 아마 편해서일 거고, 내가 자라온 문화에서 그런 표식에 이미 의미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할 거고. 내 경우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구별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그런 생각 안에서는 불량해 보일 수 있는 표식은 최대한 제거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애초에 그런 것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별 의미 없는 일이 되니까. 
 
근데 또 그렇다고 내가 타투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피어싱도 할 마음은 없다. 나처럼 변덕스러운 사람이 몸에 반영구적으로 남는 무언가를 새긴다는 사실 자체가 몹시 부담스럽다. 그냥.. 요즘 self-authorship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면서 내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기준이 어디서 왔는지 자주 돌아보게 되어서 그런 듯. 그리고 패기 있고 아름다운 나의 젊은 학생들을 보다 보면, 나도 내가 정해 놓은 범위에서 조금쯤은 벗어나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면..! 
어차피 cue가 cue 뿐이라면, 나도 저런 cue를 하나쯤 몸에 두르고 싶어서, 이제껏 비밀스럽게 신어보고 싶으면서도 차마 트라이 해보지 못했던 니하이 부츠를 주문해보았다는 것이당. 호호호. 꽤나 noncompliant 하지 않아? 
 

근데 주문한지 며칠 되었는데 왜 배송 이메일이 안오니!

 
**타투가 위험추구/감각추구/비순응성과 weak association이 있다는 연구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타투를 본 사람들이 그 사람의 성격을 어떻게 추론하는지에 관한 perception-, stigma-related 연구들이다. 그리고 이런 지각된 성격 차이는 실제 차이보다 더 크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음. 
 
Weldemariam, H., Chegeni, R., Pallesen, S., Breivik, G., Loland, S., & Sagoe, D. (2026). The social perception of performance enhancement and body modification: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on anabolic steroids, tattoos, and cosmetic surgery. Acta Psychologica, 263, 106240. 
 
Tate, J. C., & Shelton, B. L. (2008). Personality correlates of tattooing and body piercing in a college sample: The kids are alright.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45(4), 281-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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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밴드가 동네에 온다고 하는데, 워킹맘이 공연이라니 너무 호사스러운 것 같아 광고가 자꾸 떠도 그냥 클릭만 해보고 말다가.. 지난달 패킷 준비하다가 미칠 것 같아 충동적으로 티켓 한 장을 예매했었다. 그래 놓고서도 남편한테 한달동안 말을 못하고 (일한다고 새벽까지 고생하는데 나는 선선한 가을밤 자유부인이 되어 인디밴드 공연을 벅차게 보고 올 것이 너무 미안했음) 어제까지만 해도 티켓을 리셀할까, 그냥 가지 말까, 동네에 갈 만한 친구를 찾아 양도할까 고민했다. 결국 어제 말했는데, 남편이 흔쾌히 다녀오라고 했다. 주차걱정부터 해주고 흑흑. 노라고 안할 거라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유노..? 
 
그 뒤로 너무 신나서 이번 투어 셋리스트를 찾아 열심히 듣고 있다. 다음 날 새벽 또 강의하러 가야해서 빨리 빠져나와야 하니 주차도 프리미엄 파킹으로 업그레이드 함. 곧 봐요 한국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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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일 때는 편지를 참 많이 썼다. 바다 건너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애인과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게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내 글씨체는 그 사람들을 따라갔다. 내가 사랑할 만큼 근사했던 그들을 닮고 싶어서. 같은 글씨체로 종이에 글을 적다 보면 꼭 금방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멀리 있어도 너와 닮은 내 글씨를 보고 나를 먼 사람이라 느껴주지 않았으면 해서.
 
이십년 동안 수차례 이사를 하면서도 가지고 다니던 내 편지들이 있었는데, 작년 아이와 함께 이사를 한 뒤로 그 상자를 못 찾겠다. 오랜만에 한국에 손으로 편지를 적어 소식을 전하다 보니, 뜻대로 적히지 않는 나의 한글 모양이 영 이상해 좀 따라 써 보려고 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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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티스트가 신곡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불안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만들어낸 음악과 미디어의 형식으로 사람들 앞에 내놓는 것을 봤다. 그리고 며칠을 곰곰이 생각했다. 나의 vulnerable함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서. 

어릴 적 나는 누군가를 붙잡고 나의 유약함을 고백하고 싶은 충동을 누르느라 혼났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그게 약점으로 여겨지는 것을 알았고, 사람들이 날 잘 모른 채 나를 제멋대로 오해해 주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고 느껴져서, 언젠가부터 이런 이야기는 아예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요즘은 내가 지도하는 학생들에게 내가 들려줄 수 있는 나의 이야기, 그리고 그것이 줄 수 있는 영향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어쩌면 이걸 조금 드러내는 것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하고. 이게 다 그의 짧은 쇼츠 하나 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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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갯소리로 학생들을 “고갱님들”이라고 부르며 몇 년을 가르쳤다. 특히나 미국 대학은 -- 한국 대학은 다녀본 적이 없지만 남편과 주위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 교수의 권력보다는 학비를 많이 내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더 힘이 있는 곳이니 학생들을 고객처럼 대하며 나는 서비스를 베푸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몇 년을 보냈다. 이 메타포는 꽤 말이 되었다. 1) 나는 서비스를 베풀고, 그들은 2) 나의 퍼포먼스에 비용을 지불하고, 3) 나를 평가한다. 사실 애정이 많이 없어서 쫓아다니며 무언가를 하거나 누군가를 구조할 마음이 들지도 않았다.

 

그런데 딸을 낳고 나서부터 미묘하게 내 마음이 달라졌다. 학생들이 조금 더 귀여워 보인다. 그러니까 좀 더 잘 되었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나를 만나 세상이 아주 약간이라도 더 확장되었으면 한다. 잡 인터뷰에서 약간이라도 더 잘 지껄일 수 있는, 조금이라도 더 유능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전히 부모의 마음은 아니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공들여 키워 여기까지 온, 그리고 앞으로도 한참 변할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삶을 잠시 맡아 지나가는 어른. 

 

그러니까, 이왕이면 내가 내 할 일을 잘하는 동안 이 사람도 조금 더 나아졌으면 좋겠는, 그런 기특한 마음이 좀 든다.

 

some beautiful hot cows I see on my comm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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