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갯소리로 학생들을 “고갱님들”이라고 부르며 몇 년을 가르쳤다. 특히나 미국 대학은 -- 한국 대학은 다녀본 적이 없지만 남편과 주위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 교수의 권력보다는 학비를 많이 내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더 힘이 있는 곳이니 학생들을 고객처럼 대하며 나는 서비스를 베푸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몇 년을 보냈다. 이 메타포는 꽤 말이 되었다. 1) 나는 서비스를 베풀고, 그들은 2) 나의 퍼포먼스에 비용을 지불하고, 3) 나를 평가한다. 사실 애정이 많이 없어서 쫓아다니며 무언가를 하거나 누군가를 구조할 마음이 들지도 않았다.
그런데 딸을 낳고 나서부터 미묘하게 내 마음이 달라졌다. 학생들이 조금 더 귀여워 보인다. 그러니까 좀 더 잘 되었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나를 만나 아주 약간이라도 세상이 더 확장되었으면 한다. 아주 약간이라도 잡 인터뷰에서 더 잘 지껄일 수 있는, 조금이라도 더 유능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전히 부모의 마음은 아니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공들여 키워 여기까지 온, 그리고 앞으로도 한참 변할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삶을 잠시 맡아 지나가는 어른.
그러니까, 이왕이면 내가 내 할 일을 잘하는 동안 이 사람도 조금이라도 더 나아졌으면 좋겠는, 그런 기특한 마음이 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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