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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젊은 소설가는 사랑에 빠진 사람이다. 그는 스물네 시간 백치에 가까울 정도로 한 가지 생각만 할 것이다. 문장들, 더 많은 문장들을. 자신의 것인지, 읽은 책의 것인지, 아니면 이 세상 어디에서도 오지 않은. 전혀 새로운 것인지 구분이 모호한 문장들만을.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것과 남의 것은 저절로 구분이 될 테니 지금은 마르케스처럼 쓸 것인가, 죽을 것인가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귄터 그라스처럼 휘갈겨쓰는 일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젊은 소설가의 막대한 생산성은 거기서 나온다. 살만 루슈디가 말한 그 ‘열정'만이 그의 무기다. 심장이 너덜너덜해질 지경이 되어서도 소설가가 죽기는커녕 더욱 생생해지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러니까 사랑말이다. 

“만약 자기가 쓴 초고를 봤는데 토할 것 같다면 그건 소설가의 일거리, 즉 생각할 거리가 많이 생겼다는 뜻이다. 이건 뱃살이 생기거나 방이 더러워지는 일과 비슷하다. 말하자면 우리 우주가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란 뜻이다. … 단번에 명작을 쓰고 싶다면, 시간이 갈수록 방이 깨끗해지는 우주에 다시 태어날 수 밖에 없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많든 적든 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과 표정과 몸짓이 바로 그의 세계관이다. 다시 말해서 말과 행동과 표정과 몸짓이 바뀌면 그의 세계관도 바뀐다. 신경가소성이 뜻하는 게 바로 이것이다. 생각만 바뀌는 건 무의미하다. 말과 행동과 표정과 몸짓이 바뀌어야 한다. 

“문학적 표현이란 진부한 말들을 새롭게 표현하는 걸 뜻한다. 결국 문학이란 남들과 다른, 더 나아가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문장을 구성하는 걸 뜻하니까. 욕망의 말들은 꽤 진부한 편에 속한다. 욕망의 말들이 진부한 건 예나 지금이나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원하는 것은 대개 비슷하기 때문이다. “죽을 만큼 너를 사랑해!” 라고 말해보라. 그건 문학적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이다. 일단 죽지도 않을 것이며, 그러므로 진짜 사랑한다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 결국 소설의 대사란 진부한 욕망의 말들을 은폐하기 위해 참신한 문장으로 다시 표현하는 데 1차적인 목표가 있고, 그 다음으로는 캐릭터를 완성키니는 데 2차적인 목표가 있는 셈이다. 당연하게도 두번째 목표가 소설가에게는 훨씬 더 중요하다. 

“좌절과 절망이 소설에서 왜 그렇게 중요하나면, 이 감정은 이렇게 사람을 어떤 행동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예컨대 인도에 가면 타지마할이 있다. 듣기로는 총애하던 아내 뭄타즈 마할이 죽자 무굴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이만 명의 노동자를 동원해서 이십이년동안 건설한 것이라던데, 이만 명이 만든 타지마할이나 한국 노인 혼자서 돌을 쌓아 만든 남대문이나 본질은 같다. 

“소설가의 일이 무엇인지 한마디로 말하라면, 나는 “할 수 있는 한 가장 느리게 글 쓰는 일"이라고 대답하겠다. … 한 권의 책을 펴내고 나면 머릿속은 곧 과묵해진다. 그 이유는 조금 뒤에 자세히 설명할텐데, 자신의 경험으로 쓸 수 있는 소설은 한 권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변형시키며 평생 여러 권을 쓸 수는 있겠으나 자전적 의미의 소설은 한 권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글쓰기지만, 그럼에도 하루 세 시간을 소설에 할애하면 얼마간 글을 쓰게 된다. 5매 정도라면 최고다. 하지만 한 줄도 괜찮고, 아예 쓴 게 하나도 없어도 상관없다. 세 시간이 지나면 읽고 쓰던 걸 중단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외의 시간에는 소설에 대해서는 잊어버리는 게 좋겠다. 물론 점점 날이 갈 수록, 창작의 고통에 시달릴 때와는 다른 의미로, 머릿속에서 소설에 대한 생각을 떨치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참았다가 약속된 시간에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그리고 다시 세 시간동안 가능한 한 느리게 글을 쓴다. 글을 얼만큼 많이 썼느냐가 아니라 소설을 생각하며 세 시간을 보냈느냐 아니냐로 글쓰기를 판단하니 결과적으로 나는 매일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됐다. 

그렇게 매일 소설을 쓰게 되면 가장 느리게 쓸 때, 가장 많은 글을, 그것도 가장 문학적으로 쓸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 놀라움은 시작에 불과하다. 느리게 쓴다는 것은 문장을 공들여 쓰고 플롯을 좀더 흥미진진하게 구성하다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거기에는 소설이란 인간이 겪는 고통의 의미와 구원의 본질에 대해서 오랫동안 숙고하는 서사예술이라는 인식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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